독서 : 예레 7,1-11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말씀 :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겠다... 너희가 참으로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치고 이웃끼리 서로 올바를ㄴ 일을 실천한다면, 너희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않고, 무죄한 이들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않으며, 다른 신들을 따라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는다며나 내가 너희를 이곳에, 예로부터 영원히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땅에 살게 하겠다.... 그런데 너희는...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으로 맹서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 자신도 모르는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 그러면서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 안에 들어와 내 앞에 서서, '우리는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너희에게는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이 강도들의 소굴로 보이느냐?" 복음 : 마태 13,24-30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 허영엽 신부님이 지으신 <성경 속 동물들과 식물들>이란 책을 보면 가라지는 기원전 4,000년경 이집트의 무덤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독보리'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가라지 열매를 잘못 먹으면 때로 구토나 설사, 현기증 등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라지는 이삭이 패어 익이 전가지는 그 생김새가 밀이나 보리와 유사해 분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가라지는 밀이나 보리와 달리 익어도 열매가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붙어 있어 추수 때에 눈에 잘 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는 추수 때에 한꺼번에 (뿌리채 뽑아) 불에 태워버린다고 하였나 봅니다. 밀과 가라지에 관한 오늘 복음 말씀의 배경에 대해 허 신부님은 당시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기초하고 있음을 지적하여 주었습니다. 즉 로마의 탄압에 시달리며 메시아를 기다려 온 유다인들 사이에서는 순수한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죄인들을 제거해야만 흠없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셔서 죄인들과 어울리시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심으로써 많은 유다인들의 비난과 공격을 받으실 수 밖에 없으셨겠지요. 오늘 우리 사회에도 어두움의 그림자를 다 제거하면 밝음이 곧 도래할 것 같지만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계속 밝음과 어두움이 함께 하는 세상에서 빛의 역할이 되라고 촉구하고 계십니다. (2010년 묵상 자료) 가라지는 밀이 될 수 없으나 인간은 악인이 선인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자연의 한계와 인간의 가능성은 서로 다르다는 것에 대해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났습니다."(2코린 5,17) 일상적인 농사법으로 볼 때 가라지나 잡풀은 초기에 제거하지 않으면 곡식보다 더 빨리 자라 벼가 낱알을 맺기도 전에 씨를 맺어 퍼트려놓습니다. 그러기에 다음 해에는 잡풀씨가 걷잡을 수 없이 많이 번지게 됩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농부들은 아예 못자리에서부터 피사리(가라지와 같은 피를 뽑는 것)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주님은 추수 때까지 가라지를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명하셨습니다. 다음 해를 준비하는 농사꾼의 입장으로서가 아니라 종말에 마지막 추수를 하는 심판관의 입장에서 그렇게 명하시는 것으로 이해하게 됩니다.(묵상 후기) 시골에서 자랄 때에 이따금 못자리에 나가 피사리를 하는 형님들을 뵈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판에서 자라고 있는 벼와 피는 쉽게 구별할 수 없을만큼 아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어찌나 비슷하게 생겼는지 피를 뽑는다고 한 것이 그만 벼를 뽑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형님들은 벼와 피를 구별하는 방법을 다시 자세히 일러주시곤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밭에서 자라는 밀과 가라지도 우리 못자리에서 자라는 벼와 피처럼 아주 비슷하게 생겨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주인은 수확 때까지 가라지를 내버려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행동하거나 선택할 때에도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인지 구별하기 어려워 해놓고 보면 그것이 올바르지 않았던 것임을 뒤늦게 후회해 본 적도 있습니다. 공부 방법도 내가 택한 것이 제일 좋은 줄 알았는데 친구가 해 놓은 요약 내용들을 보면 내가 해 놓은 것과 주요 관점이 다른 것을 보고 내 내용들을 고쳤던 기억들도 납니다. 외국에 나가 공부하던 시절 이야기를 잠깐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로마 유학길에 오른 한국 사제들의 경우 첫 해에는 언어가 잘 안 들려 강의 후 교실 밖으로 나와 서로 노트를 보거나 서로 강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같은 강의를 들었는데도 서로 주장하는 바가 아주 많이 달랐던 추억들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같은 씨앗을 마음의 밭에 뿌려 주어도 듣는 이들의 마음의 밭에 싹트는 새순들은 어찌 그리 달라질 수 있는지 신비스럽기만 합니다.